2014년 08월 14일

좀비벤처에서 창조벤처로 가기

작성일 : 2013-12-24

좀비벤처에서 창조벤처로 가기

창조경제, 창조기업, 창조적 기업인 등 요즈음 방송과 신문지면, 그리고 정부 시책에 이르기까지 화두는 단연 창조적 가치의 창출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듣고 있노라면, 14년 전 내가 개발한 기술과 제품으로 세계 일류 상품을 만들어 존경받는 기업을 일구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며 ICT 기업을 세우고 또 지금까지 생존해 온 벤처 기업인으로서 부끄러움이 먼저 앞선다.

물론 창사할 때에는 회사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진행해 본 경험과 시스템 소프트웨어 분야의 지식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있었다. 또 함께 꿈을 공유한 똑똑한 후배들이 있었고,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기술과 제품군에 대해 오랜 기간 벤처마킹과 사전 조사까지 나름 완벽하게 마쳤다. 십시일반하여 창업자금도 용이하게 확보하고, 사업초기엔 잘 연결된 인적 네트워크로 인해 기본적인 기술에 대한 방향도 쉽게 정립할 수 있었다. 제품화 마무리가 다가오며 자금을 계속 투여해야 할 때, 아내의 흔쾌한 동의에 집도 팔아 창업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규모의 자금도 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제품은 개발되었고, 초창기 고객들로부터 ‘버그(bug)가 많으니 물건 빼라’는 소리를 한 두 차례 듣기는 했지만, 중형 규모의 NAS(Network-Attached Storage) 제품군에선 국내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제품 인지도를 갖게 되었고, 10여 년을 지내며 경쟁자이자 파트너였던 기업들이 무너져 가는 척박한 환경 하에서도 우리는 살아남게 되었다.

그 와중에 정부가 바뀌며 우여곡절도 있긴 했지만, ‘ICT 대국을 목표로 한다’는 대명제하에 ICT 분야 중소기업을 위해 추진된 지속적인 지원 프로그램들은 기술투자를 위한 자금력이 취약한 우리 ICT 기술기업에겐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기 위해, 자사의 기술개발 로드맵을 정부에 제안서로 제출했고, 여러 차례 소중한 자금들을 지원받아 진화된 제품들까지 출시하게 되었다. 아마 많은 국내 ICT 중소기업들도 우리와 비슷한 규모와 동기로 시작하여,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쏟아 넣어 자신들의 기업과 꿈을 키워 왔고, 게다가 정부지원 자금까지 받아, 제품 완성도를 높이고 사업화하는 방식을 취하여 왔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듣기 거북한 용어가 내 머리를 강하게 때리며 귀에 흘러들어왔다. ‘좀비 벤처(Zombi Venture)’ 라는 말이었다. 미국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좀비영화에서 유래하여 벤처에 붙여진 신조어인데, 자기 제품의 매출로 회사가 성장하기 보다는 정부가 지원하는 자금에 의존하여 연명해가는 벤처 회사들을 빗대어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내 마음을 편치 않게 했다. 우리 회사가 좀비벤처는 아닐까? 비록 그렇지는 않더라도 그런 모습이 우리에게 있지는 않을까하는 소심한 찔림이 내 가슴을 콩닥 콩닥 뛰게 했다.

우리 회사를 들여다보면, 매출의 대부분이 개발제품을 판매하는 개발 중심회사를 지향한다. 그런데 신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적인 제품 업그레이드를 시도하기 위해, 꼭 필요하긴 하지만 또 날려버릴지도 모르는 개발 자금이 풍족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매출되는 이익으로는 아무리 아껴 써도 유지비용만으로도 빠듯할 뿐, 신규 개발비로 투여하기엔 항상 역부족이었다. 이런 우리에게 신규개발비를 과감(?)하게 투여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것이 정부의 ICT 지원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올해에도 그 결실로 2개의 제품이 개발되었고, 어떻게 고객을 공략하고, 판매정책을 수립할까 하는 데에 흥겨운 연말 분위기도 잊고 밤을 새며 난리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좀비벤처일까, 아니면 창조벤처일까?

직설적으로 말해, 좀비벤처는 지원 자금이 없으면 곧바로 회사가 위기를 만난다. 그 자금이 회사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주요 수입원 대부분이 정부자금인 것이다. 그래서 항시라도 정부자금의 지원이 끊기는 경우 망할 수 있는 회사, 스스로의 생존력을 상실한, 무늬만 벤처인 회사다. 이 회사에선 CEO의 1순위 업무가 정부자금을 끌어오는 것이지, 제품 판매나 사업 비전을 수립하는 데 있지 않다. 이 회사에선 CEO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이 자금을 정부나 투자자로부터의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씀씀이 또한 헤프다. 빛 좋은 게살구다.
그리고 그 자금의 주요 사용처가 사업 로드맵 상의 신제품 개발이 아니고, 개발은 다만 잘 꾸며진 과제용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된 제품의 완성도나 경쟁력이 취약하여 잘 팔리지 않고, 제품화되어도 시기를 놓쳐 판매되지 못한다. 회사에서 축적해야 하는 가치의 중심인 기술력이나, 엔지니어의 성숙도는 미약하고, 회사 비전에 대한 통일된 공감대가 회사 분위기로 흐르지 않는다. 비록 후속과제를 준비하더라도 기술이나 제품의 연결성이 없다. 좀비 벤처에겐 정부의 ICT 개발지원금이 그때를 연명하는 마약일 뿐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ICT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측면에서 창조벤처는 어떨까? 앞서 언급하였듯이 어떤 ICT 중소기업이든지 신규개발자금은 항상 부족하다. 마치 성장하는 청소년에게 항상 충분한 영양공급이 부족하듯이. 다만 창조벤처는 이 자금이 없다고 회사가 위기에 처하지는 않는다. 성장이 더딜 수는 있다. 하지만 창조벤처에게 ICT 개발지원금은 어딘가 가려운 한 곳을 긁어주면 온 몸이 시원해지는 효자손 역할을 한다.
그리고 창조벤처의 CEO는 그 자금을 회사를 혁신하는 데 사용한다. 그들은 다음을 위해 현재 제품 개발의 틀을 바꾸어야 하는데 지금의 매출로는 신규투여하기 힘들 경우, 자금 지원이 안되면 융자라도 받아 투여하겠다고 각오가 설 경우 지원 자금을 사용한다. 그러기에 창조벤처는 이 지원금을 자신들의 봉급 올리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 봉급은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팔아 벌어서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창조벤처에게 ICT 개발지원금은 마약이 아닌 묘약이다.

우린 창조벤처일까 아니면 좀비벤처일까? 모든 자원을 투자해서 개발하여 만들긴 만들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쉽게 시장에서 자리 잡지 못했을 때, 우리 ICT 중소기업에게 정부의 지원은 한줄기 빛과 같다. 그런데 그 빛에 의존해 가며 점차 쉬움과 편함에 익숙해져 벤처 정신을 상실할 때, 우리는 어느 순간이라도 좀비 벤처의 늪에 빠지게 되고, 더 이상 회복 불능의 상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다. 어느 벤처도 그런 쉬움과 편함의 유혹에 한번이라도 흔들리지 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신우일신하며 나 스스로를 이른 새벽마다 광야로 몰아내는 용기를 낼 때, 우리 기업은 좀비벤처의 유혹을 넘어서서 창조벤처로 가게 될 것이다. 또 새벽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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