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8월 14일

선구자는 밑지고 산다

작성일 : 2010년 6월

선구자는 밑지고 산다

역사 이래 어느 분야에서든지 선구자들이 있어왔다. 우리 IT업계에도 흔적을 남긴 선구자들이 있다. 인터넷 전화에서 새롬, 인터넷 포털에서의 다음, 전자의료기기의 메디슨, 대형 스토리지의 넷컴스토리지, 셋톱박스의 휴맥스, 한글편집기의 한컴, 백신프로그램의 안연구소 등등, 멀리 다른 나라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이 작은 나라에서도 나열하자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업과 창업자들이 새로운 분야에서 위험부담을 무릅쓰며, 자신을 던져서 기술을 개발하고 IT사업을 일으켰다.

이들을 보면 시장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하여, 자신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쏟아 넣고, 집도 팔아 넣고, 젊은 시절의 정열을 몽땅 부어 넣어서 짧게는 5년, 길게는 십 수 년을 자신의 신념에 걸었다. 몇 명의 혈맹관계 동지들과 골방에서 시작하여,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세월을 내 달렸다. 그래서 지금의 그들 중 어느 정도는 잘 잡힌 기반을 동력으로 다음 단계를 향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외 일부는 살아 숨만 쉬고 있고, 나머지는 그 짧은 세월에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아, ‘아 거기?’하며 기억을 되돌려야만 한 자락이 잡힐까 하는 정도로 잊혀져 있다.

이들 모두의 바램이야 선구자적 시도만큼이나, 한 획을 긋는 이정표를 남기고 성취와 성공의 언덕에 오르기를 바랐겠지만, 그들의 결과는 너무나도 인색하고 다양하다. 물론 결과가 어떠하든지 이들이 우리 미래에 대해 건강한 풍요를 고민하며, 도덕적 가치에 부합되는 산업분야에 대해 주로 선각하여 솔선했음은 변하지는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보다 향락적이고 소비 지향적인 서비스 아류산업에만 과밀하게 집중하며 이익의 결과만을 추종하는 일부 대기업들이 부의 중심에 서 있는 현실 속에서, 앞서 피 흘린 노고의 대가를 가로챈 기회주의적 승냥이라도 먹이를 움켜지고 있으면 칭송 받는 이 세태 속에서, 이들 선구자의 가치는 우리에게도 평가 절하되어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남아있는 이보다는 잊혀진 이가 훨씬 많다.

그렇지만 거두절미하고, 그들이 사업의 결과를 보며 성공하였든지 실패하였든지 간에 그들의 가치는 인정되어야 한다. 그들이 첫 단계에서 귀감이 되는 모습으로 성공하고, 다음에 실수하여, 방향을 잘못 잡아, 또는 환경이 악화되어 기술적으로나 사업적으로 실패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시도는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비록 그들의 사업방향이나 아이디어가 미흡한 완성도를 보이고, 프로페셔널한 사업의 영역에서 그들의 대응과 접근방식이 미숙하여 일반인에게 꿈을 키워주기 보다는 어리숙한 흉내쯤으로 평가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열정에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왜냐하면 먼저 역사 속에서도 자신을 던진 선구자들의 선각과 솔선에 의해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꿈이 우리 꿈이자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작은 지식과 일천한 경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꿈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불만분자(?)인 우리의 현실 앞에서 먼저 가능함을 보여주며 내달리는 모습이, 그냥 경마장 구경거리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또한 간절한 꿈이자 소망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역사나 꿈을 논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이 방향성만이 내가 세상에서 한 번 칼을 뽑아, 나에게 목숨 걸만한 떳떳함을 부여하는 가치가 되기 때문이고, 먼 훗날 내 아내와 자녀에게 나는 이렇게 했노라고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는 사유서를 작성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남은 모르더라도 우리도 알고, 그들도 안다. 이들의 모습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외통수이기 때문이다. 내 꿈을 무마할 만한 피할 길이 없고, 내 열정을 잠재울만한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타까움과 소망을 가지면서 선구자를 보지만, 선구자의 삶을 셈법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그의 일획으로 그가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그는 인생을 바쳤고, 많은 삶의 오랜 시간들 동안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을 포기해왔다. 또한 소중하다고 일컬어지는 많은 것을 잃어왔고, 그것을 되찾을 수는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게다가 성공의 문에 이르지 못한 경우는 더욱 더 그렇다. 선구자는 이곳 세상의 셈법으로는 밑지고 산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무모한 삶이다. 다만 앞서 기술한 그들의 가치와 역할로 인해 주변에, 이 사회에 끼친 영향력을 셈법의 저울에서 다른 추에 올릴 수 있다면,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이렇듯 선구자들의 마이너스 셈법을 바꿀 새로운 공식은 없다. 다만 다행인 것은 이들은 이 셈법을 잘 모르거나 당연시 한다는 것이다.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와 자본력을 바탕으로 외산 제품을 독점적으로 가져다 팔면서, 하부 채널에 대한 갑을관계의 견고성을 뿌듯해하며 유통 파워를 최고의 knowhow로 자랑하는 현실 속에서, 지금도 가산 디지털단지에서, 대전 테크노파크에서, 그리고 크고 작은 아파트형 공장에서 늦은 밤에 불을 밝히며 새벽을 기다리는 우리의 선구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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